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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57
  • 01_걷기.png

    전주시 걷기협회
    • 회장 문성배
    • 부회장 문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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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 걷기협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걷기협회
    회 장
    문성배
    부회장
    문양배
    일반전화
    비공개
    역사

    걷기는 누구나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인간이 하는 운동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운동이다. 걷는 것은 몸 전체를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 시키는 것으로 단순해 보이는 동작이지만,이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려면 관절, 뼈, 근육, 신경 등이 모두 조화롭게 움직여야 한다. 이 중 한 부분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정상적인 걷기가 불가능해진다. 많은 현대인들이 운동 부족으로 인해 예전보다 체력이 떨어져 있기도 하고 많은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운동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막상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시간, 장소, 비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운동을 꾸준히 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걷기는 시간, 장소, 비용문제 모두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다. 걷기는 어떻게 걷든지 간에 걷는 방법은 모두 동일하다.
    다만 걷기의 숙련 정도에 따라 팔의 위치와 발을 놓는 위치가 속도에 맞게 변할 뿐이다. 걷기의 종류는 속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완보 (천천히 걷기) : 걷기의 첫 단계로서 기초연습단계이다, 산보 (산책 걷기) : 일상생활에서 보통 속도로 걷는 방법이다, 속보 (빠르게 걷기) : 팔을 앞뒤로 자연스럽고 활기차게 움직인다, 급보 (급하게 걷기) : 유산소성 운동능력의 향상을 극대화하여 성인병의 예방 및 치료에 효과적인 걷기 방법이다, 강보 (힘차게 걷기) : 일반인들이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걷기 방법이다, 경보 (경기 걷기) 등이 있다.

  • 02_검도.png

    전주시 검도회
    • 회장 구본승
    • 부회장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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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 검도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검도회
    회 장
    구본승
    부회장
    없음
    일반전화
    -
    역사

    오늘날 검도경기의 원형은 격검(擊劍)이다. 중국의 <사기(史記)>나 <한서(漢書)>에는 격검이 상대와 일 대 일로 겨루는 무술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군자국의 예로 보아 일찍부터 이 격검이 행하여졌을 것이나 그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신라 화랑들이 격검을 수련하였다는 사실이다. <삼국유사>의 김유신조에 보이는 '검술을 연마하여 국선이 되었다.'라는 내용에서 격검을 잘하지 못하면
    최고의 화랑인 '국선'이나 '풍월주'에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삼국사기>나 <화랑세기>에는 화랑들이 월정(月庭)과 같은 일정한 수련장소에 모여 체계적으로 격검을 수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깊은
    산악이나 동굴에 들어가 극기훈련과 심령훈련까지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검기(劍器) 역시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삼국 모두가 동양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이러한 칼의 기능과 기기(技器)가 후대에 일본으로
    전파되어 오늘날 검도의 모태가 된 것이니, 이는 누구도 부인 못할 역사적 사실이다. 비록 근대 수백 년간 우리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무(武)를 경원하고 칼에 관해 소홀히 하면서 자괴(自愧)에 빠져들었으나, 중국의
    <무비지(武備志)>에 소개된 유일한 검법인 <조선세법(朝鮮勢法)>과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검법인 <본국검법(本國劍法)>은 세계검도사에 큰 빛이 되고 있는 것이다. 죽도를 이용하여 상대방을 가격함으로써 승부를 겨루는
    투기 스포츠이다. 가격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손목, 머리, 허리, 목 등으로 정해져 있으며 경기자는 호구를 착용해야 한다. 검도의 수련은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는 예절과 수련에 앞서 갖추어야 할 것을 배운다. 그 다음에
    기본자세와 기본동작을 습득하고, 그 뒤에 대전연습과 본연습(本{練習), 그리고 시합연습에 들어간다. 기본자세에는 상단(上段)·중단(中段)·하단(下段)이 있으며, 각기 공격과 방어에 적합한 특성을 가진다.
    검도의 목적은 운동을 통하여 심신을 단련하고 인격을 수양하며, 건전한 여가선용을 하는 데 있다.

     

  • 03_게이트볼.png

    전주시 게이트볼 협회
    • 회장 정영길
    • 부회장 이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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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 게이트볼 협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게이트볼 협회
    회 장
    정영길
    부회장
    이기만
    일반전화
    -
    역사

    게이트볼은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게 되었다. 1980년 대 초반 정부는 스포츠 입국을 강조하며 스포츠 정책을 표방하던 시기이다. 이를 위해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을 유치하고, 1982년 체육부 설치, 프로야구, 1983년 프로축구, 프로씨름 등이 출범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전반에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참여의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경제 성장으로 인한 새로운 여가가 필요한 여가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또한 사회 발전으로 인한 노령화 사회로 노인 체육의 관심이 일기 시작하던 시기였다.이러한 한국의 사회적 배경에 1980년대 초반 일본 게이트볼이 성행한 점도 한국에 게이트볼이 도입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즉 1980년 대 초반 일본에서는 사회전반에 노령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생활체육의 열기가 매우 고조된 상태였다. 이러한 시기에 일본 사회에서 게이트볼이 전국적인 노인 스포츠로 자리잡고 큰 인기와 더불어 참여하는 동호인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뿐만 아니라 게이트볼의 보급의 눈을 해외로 돌려 관광객이나 이민자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분위기는 한국에 게이트볼이 들어오는데 기여하였다. 실제로 한국 게이트볼은 일본 게이트볼 동호인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국내 게이트볼 동호인들을 조직하였다. 이와 함께 한국 게이트볼은 무엇보다 노인체육의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도입을 모색하였던 것이다.

  • 04_골프.png

    전주시 골프협회
    • 회장 정진
    • 부회장 없음
    기본정보 보기

    전주시 골프협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골프협회
    회 장
    정진
    부회장
    없음
    일반전화
    -
    역사

    골프의 기원은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양을 기르던 목동들이 끝이 구부러진 나뭇가지로 돌멩이를 날리는 민속놀이가구기로 발전했다는 설과 기원전 네덜란드에서 어린이들이 실내에서 즐겨하던 콜프(kolf)라는 경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또한 네덜란드의 콜벤이라는 오늘날의 크리켓이나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구기가 14세기경 바다를 건너 스코틀랜드에 전래 되었다는 설이 있다. 15세기에는 골프가 지나치게 성행하여 국민의 무도(武道)와 신앙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칙령으로 전면금지하거나, 안식일에는 플레이를 금지 하였다. 골프는 귀족계급에도 만연되어 왕도 즐겼으며, 16세기 이후에는 신분의 상하를 불문하는 스포츠로까지 발전되고, 잉글랜드에까지 파급되었다. 골프를 ‘Royal and Ancient Game’이라고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골프에 관해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1744년 스코틀랜드에서 지금의 에든버러 골프인협회의 전신인 신사골프협회가 조직되어 경기를 한 것이 골프 클럽과 경기대회의 시초이다. 처음에는 실버클럽대회라 하여 실물 크기로 만든 은제 트로피를 만들어 쟁탈전을 벌였다. 이 협회의 의사록에는 13개조로 된 세계 최초의 골프규칙이 기재되어 있으며 이것이 현행 골프규칙의 기반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 뒤 스코틀랜드·잉글랜드 각지에 골프클럽이 만들어졌으며, 또한 선수권대회 형식의 경기도 시작되었다.

  • 05_국학기공.png

    전주시 국학기공 협회
    • 회장 조형섭
    • 부회장 허복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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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 국학기공 협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국학기공 협회
    회 장
    조형섭
    부회장
    허복금
    일반전화
    -
    역사

    국학(단학)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당시 한국연방(桓國聯邦)의 한인천제는, 인간은 누구에게나 인간의 실체인 신성(神性 혼, 自我)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 하였으며 이러한 수행법은 '신선도(神仙道)‘풍류도(風流道)’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왔다. 이 깨달음의 법은 신시배달국을 세운 제1세 한웅천황(거발한 한웅)에게 전해졌으며 한민족의 건국이념이 들어 있는 3대 경전인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을 통하여 후대에 전달되었다. 고조선시대인 단군조선 제 1대 단제(단군왕검) 때에는 단학이 집대성되고 널리 보급되어, 우리 민족은 선도를 통해 심신의 단련뿐 아니라 깨달음을 추구하며 살았고, 깨달음의 문화를 꽃피워 이웃의 국가나 종족들에게 전했다. 삼국시대 국학(단학)의 전통은 삼국 시대의 국가인재양성제도로 이어졌다. 100만 수나라 대군과 30만 당나라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고구려의 기상은 국학(단학)수련으로 심신을 연마하였던 을지문덕, 을파소, 양만춘, 연개소문 등 조의선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신라의 화랑들도 전국의 산천을 유람하는 수행자들이었으며 그들이 단전을 두드리는 소리가 북소리처럼 산을 울렸다고 한다. 또한 백제에서도 문무도를 통해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였다. 고려시대 단학은 고려 초기에 국자랑 제도로 계승되었다. 그 후 조선시대에는 동학의 정신과 외세침입 때마다 일어난 의병들의 정신으로 겨우 그 명맥만이 이어져 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국학(단학)의 맥은 거의 끊기게 되었으나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리 우는 홍암 나철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으로 계승되어 간신히 흘러오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단전호흡이나 한민족의 전래 심신수련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붐을 일으켰다. 현대 국학(단학)은 1980년 이래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일지 이승헌총장에 의해 그 정신과 수행법이 뇌과학을 바탕으로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어 계승하게 되었으며 한민족의 전통무예로 심신단련법인 생활체육으로 발전되었다.

  • 06_궁도.png

    전주시 궁도 협회
    • 회장 이중수
    • 부회장 정범수
    기본정보 보기

    전주시 궁도 협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궁도 협회
    회 장
    이중수
    부회장
    정범수
    일반전화
    -
    역사

    일찍이 중국인들이 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이족(東夷族)이라 하였는데, 동이(東夷)의 이(夷)는 대(大)와 궁(弓)의 합성어로 “동쪽의 활 잘쏘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이는 우리 민족이 선사시대부터 활쏘기를 즐겨하고 궁시(弓矢)의 제작기술이나 다루는 능력이 주위 어느 민족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도는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슬기와 빛나는 얼이 깃든 자랑스러운 전통무예로서 삼국시대부터 국민을 훈련시키는 주된 방법으로 사용되어 이를 통해 한민족의 웅지와 진취적 기상을 배양함으로서 우리 겨레의 패기와 활달한 기상을 유감없이 발휘한 전통무예이다. 이를 바탕으로 평시에는 심신단련 및 정신수양의 방편으로 삼았으며, 유사시 국가를 방위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당시에는 활의 사용과 발달을 꾀하여 그 종류도 다양하였으나 애석하게도 현재까지 전래된 것은 오직 각궁(角弓)뿐이다. 이렇듯 전통무예인 궁도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무예이자 정신문화로서 오천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자랑스러운 전통스포츠이다. 그런 관계로 일제강점기때 일본은 완전한 식민지를 구축하기 위해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말살시키려 했고 그 결과 수천년동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 온 궁도가 크게 위축되었다. 이에 뜻있는 인사들이 우리의 전통무예인 궁도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였던 바 대한궁도협회 전신인 조선궁술연구회가 1922년 7월 11일 서울 황학정에서 발기인 35인으로 창립하였으며, 1926년 5월 20일에는 조선궁술연구회를 조선궁도회로 개칭하였으나, 1945년 광복 때까지 유명무실하다가, 광복 후인 1946년 2월 10일 조선궁도회로 부활하여 활동을 시작하다가 1948년 8월 25일 조선궁도회를 대한궁도협회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울러 1954년 대한체육회에 가맹단체로 가입하였고, 1962년 3월 전통궁이 아닌 양궁을 도입하여 각급학교에 보급시켰으며, 1963년 7월 27일 국제양궁연맹(FITA)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되었고, 1983년 양궁 분야를 대한양궁협회로 분리시켜 대한궁도협회에서는 전통스포츠인 궁도만 전담하고 있다. 궁도는 활을 이용하여 목표물에 얼마나 정확히 맞추는지를 겨루는 스포츠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활을 사용한다. 활은 총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는 대표적인 무기였으나 효용 가치가 떨어지게 됨에 따라 옛 선인들의 호연지기를 기르는 무예 종목으로서 발달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서양에서 전해진 양궁과 함께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는 스포츠 종목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궁도 경기에는 이충무공탄신기념대회, 대통령기쟁탈 전국 시·도 대항 궁도대회, 전국남녀 궁도선수권대회, 전국남녀중고등학교 궁도대회, 전국 궁도종합선수권대회, 전국체육대회 등이 있다.

  • 07_그라운드골프.png

    전주시 그라운드 골프 협회
    • 회장 최순례
    • 부회장 황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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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 그라운드 골프 협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그라운드 골프 협회
    회 장
    최순례
    부회장
    황호은
    일반전화
    -
    역사

    그라운드골프란 골프를 재편성한 스포츠로서 1982년에 일본국 돗도리 현 도마리손 생애스포츠 활동추진사업의 일환으로 도마리손 교육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그라운드골프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지 않고 규칙도 간단하기 때문에 초심자도 금방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손쉽게 즐기고, 체력 다지기, 동료 만들기, 커뮤니티 만들기를 할 수 있다.생애스포츠의 연구가 전 오사카교육대학의 시마자키 교수와 돗도리 현 내의 유직자로 조직한 다지기 생애스포츠 활동추진전문위원회가개발, 룰의 책정에 몰두해, 실제로 도마리손의 고령자 모두에게 그 원안을 시도해 보고, 개량에 개량을 더해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우리나라에는 1993년 충북음성과 경북경주에서 경기를 시작하였다. 골프채와 비슷한 나무채로 게이트볼처럼 공을 굴려 쳐서 직경 36cm 홀에 넣는다. 홀 포스트에 최소 타수로 경기를 끝낸 사람이 이긴다. 보통 잔디 축구장을 빌려 최장 50m 짜리 홀을 비롯해 16홀을 만들 수 있다. 구멍을 뚫지 않고 공을 집어넣을 수 있는 홀 깃대를 세우기 때문에 잔디밭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그라운드골프 홀 포스트는 인코스 4개, 아웃코스 4개 등 8홀이 기본이다. 한 팀에 6명이 기준이지만 인원수 제한 없이 경기를 즐길 수 있다.

  • 08_나비골프.png

    전주시 나비골프 협회
    • 회장 임관
    • 부회장 강만희
    기본정보 보기

    전주시 나비골프 협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나비골프 협회
    회 장
    임관
    부회장
    강만희
    일반전화
    -
    역사

    2004년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고안된 나비골프는 골프에서 파생된 신종 골프 스포츠이다. 공이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 사뿐히 내려앉는다고 하여 나비골프라 칭하게 되었다. 나비골프는 운동내용이 과격하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가족형 레포츠이다. 프로나 아마추어, 체격이나 체력상의 차이, 빈부의 차이를 극복하고 친구와 가족 모두 함께 누구나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으며 가족 화목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나비골프의 스윙은 일반 골프 스윙보다는 좀 더 단순한 스윙으로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보내는 경기이기 때문에 스위의 기본 원리만 이해하면 쉽게 포인트 게임이나 골프장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매우 쉬운 경기이다.​

  • 09_넷볼.png

    전주시 넷볼 협회
    • 회장 정용성
    • 부회장 김종식
    기본정보 보기

    전주시 넷볼 협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넷볼 협회
    회 장
    정용성
    부회장
    김종식
    일반전화
    -
    역사

    여성에 맞게 규격과 규칙이 조정된 농구와 흡사한 스포츠이다. 1895년 영국 여자들이 미국에서 경험한 농구를 들여와 여성에게 맞게 룰을 개정하여 소개한 것이 시초이다. 넷볼이란 명칭은 골포스트에 붙어 있는 바스켓을 링과 네트로 명칭을 구분하여 사용한 데서 유래하였다. 20세기 초 영국 사람들이 식민지로 이주하면서 세계에 알려졌다. 현재는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활성화 되고 세계선수권 대회까지 개최되어지고 있습니다. 세계선수권대회는 1963년부터 4년마다 개최되고 영연방 국가 간의 경기인 ‘영연방 경기(Common Welth Game)’의 주 종목이기도 하다. 격렬하고 힘든 농구와 달리 몸이 부딪히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알맞은 스포츠이다.​

  • 10_농구.png

    전주시 농구 협회
    • 회장 김동현
    • 부회장 채효석
    기본정보 보기

    전주시 농구 협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농구 협회
    회 장
    김동현
    부회장
    채효석
    일반전화
    -
    역사

    1881년 미국의 메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의 YMCA 훈련학교의 체육부장 이었던 L. Gulick 박사의 지시에 의해 학교 체육 지도자였던 J. Naismith(1861~1939)가 겨울철에 즐길 수 있는 실내 스포츠로 창안하였다. 그는 처음에 체육관 양쪽에복숭아 상자를 하나씩 달아 놓고 공을 던져 그 가운데에 공이 머물렀을 때 골인으로 인정하였다. 이후 전 세계로 보급되어 마침내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부터 정식경기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에 농구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07년 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초대 총무이자 미국인 선교사인 길레트(P.Gillett:한국명 吉禮泰)에 의해서이다. 1916년 3월 25일 미국인 반하트가 기독청년회 간사로 부임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지도 보급이 이루어졌다. 1925년 9월에는 조선바스켓볼협회가 창립되었고 본격적인 농구훈련 및 지도가 시작된 것은 1927년 3월 당시 일본 도쿄 YMCA 체육부 간사인 F.브라운을 초빙하여 농구 강습회를 개최하면서부터였다. 1931년 4월에는 조선농구협회와 조선농구심판협회가 탄생하였다. 1945년 12월 19일 조선농구협회가 재창립 되었으며, 1948년 KBA(Korea Basketball Association:대한농구협회)로 개칭하였다. 또한 1946년 대한체육회에 가맹하였고, 1947년 FIBA(Fdration Internationale Basketball Association:국제농구연맹)에 가입하였다. 1963년에는 ABF(Asia Basketball Federation:아시아농구연맹)에 가입하였다.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는 1960년대의 걸출한 선수, 박신자 이후 출현한 박찬숙 등이 활약하여 아시아의 강호 중국 등을 물리치고 은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역대 올림픽 참가 이래 처음으로 단체 구기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였다. 1983년부터는 한국 최대 규모의 성인 농구대회인 농구대잔치가 개최되었으며, 1997년에는 프로농구리그가 창설되어 오늘에 이른다. 그 이후에도 각종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생활 체육으로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인기 스포츠가 되었다.​

  • 11_다트.png

    전주시 다트 협회
    • 회장 오준희
    • 부회장 형성길
    기본정보 보기

    전주시 다트 협회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다트 협회
    회 장
    오준희
    부회장
    형성길
    일반전화
    -
    역사

    다트의 시초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영국의 백년전쟁(1337~1453) 당시 영국의 병사가 전쟁 중 여가시간을 보낼 때에 활과 화살로 특정의 목표를 노리고 서로 경쟁한 것이 근대 다트의 기원으로 전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와인통의 뚜껑을 보드 삼아 화살을 쏘았다가 나중에는 나무를 쓰러뜨려 커팅한 것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때 쓰였던 나무 판이 후의 다트의 디자인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무렵부터 약 500여년의 시대를 다트는 영국의 군대와 함께 세계의 7개의 바다와 대륙을 떠돌며 진화 되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영국에 평화가 찾아 온 시점에서 무기로 사용하던 화살을 짧게 잘라, 활을 쓰지 않고 손으로 던지는 경기로 바뀌어 게임으로서 즐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시대와 함께 표적으로 큰 나무를 잘라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건조된 표면에 몇 개의 방사상의 균열이 생겼는데 이것을 구역별 채점 방법으로 결정하면서 표적을 노리는 테크닉의 재미를 찾아내었고 지금의 경기방식과 흡사하게 바뀌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다트라는 게임이 보급되었지만 득점이 가지각색이었다가 1896년에 한 영국인에 의해 점수 구분을 붙이는 방법이 고안 되어 현재 보드의 원형이 완성되었다. 영국에서는 다트라는 게임이 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스포츠라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단번에 전국적으로 스포츠 게임으로서 퍼져 나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 12_당구.png

    전주시 당구 연맹
    • 회장 이열
    • 부회장 이승영
    기본정보 보기

    전주시 당구 연맹Sports Organization

    단체명
    전주시 당구 연맹
    회 장
    이열
    부회장
    이승영
    일반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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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B.C 400년경에 옥외스포츠로서 시작되었던 당구는 영국기원설과 프랑스기원설이 있다. 영국은 포켓게임을 위주로 발전해 나갔고, 프랑스는 4구 및 3구와 같은 캐럼 게임을 발전시켰다. 당구가 유럽에서 아시아권으로 전파된 것은 1850년에 네덜란드인을 통해 일본 황실에 보급된 것이 아시아 최초이다. 우리나라에는 1910년 순종 때 일본인을 통해 창덕궁 동행각에 2대의 당구대가 설치되면서 한국 당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중국도 만주국의 마지막 황제 부의가 일본군에 의해 당구를 접했고, 지금도 요령성 심양시에 위치한 황궁에는 그 당시 당구대가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 일본 중국에서 최초로 당구를 접한 동호인은 전부 임금님이었으니 당구가 귀족 스포츠로 출발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일제시대와 해방 후에는 당구가 고급사교운동으로 인식되었지만, 자유당 정권을 거치면서 불량배들의 오락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당구인들의 노력으로 국제사회에서 당구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당구는 1995년 GAISF(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에 88번째로 가입되었고, 1998년 IOC총회에서 올림픽에서 인정하는 종목이 되었다.